[기획시리즈] 금융소비자 주권 찾기 ③ 허술한 방카슈랑스
남자, 꿈꾸다/남자, 꿈꾸다(back up) 2006. 11. 24. 00:49[기획시리즈]금융소비자 주권 찾기 ③ 허술한 방카슈랑스
은행, 보험판매 ‘짭짤’…하지만 일단 팔고나면 ‘쌀쌀’하다는거!

보장근거 계약사본 못받은 고객도 많아
무자격자가 팔기도…관리창구 운영 안해
지난 2003년 방카슈랑스 제도가 도입된 뒤 고객들이 은행에서 보험을 가입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은행들은 방카슈랑스 도입으로 썩 괜찮은 수수료 수입을 올리고 있다. 국민·우리·신한·하나·외환 등 5개 시중은행은 올 초부터 8월 말까지 수수료 수입으로 모두 1022억원을 챙겼다. 전국에 1400여개 지점망을 갖춘 국민은행의 경우 363억원으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렸다. 234억원의 수수료 수입을 거둬 업계 2위를 한 우리은행은 지난해(75억원)에 비해 수입이 3배 이상 늘었다.
<한겨레>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567명 가운데 42%(240명)가 은행을 통해 보험에 이미 가입했거나, 앞으로 가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험 판매 시장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이다.
보험 영업은 하면서 판매자 의무는 거의 안지켜=그렇다면 은행은 보험 판매 때 지켜야 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을까?
설문조사 결과, 보험 판매 때 보험사나 은행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이른바 ‘3대 기본질서 지키기’가 은행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은 보험사 등을 상대로 보험 판매와 관련해 여러 경로를 통해 감독 규제를 한다. ‘3대 기본질서 지키기’를 준수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3대 기본질서 지키기란 △보험청약서에 피보험자(보험의 대상)가 반드시 자필로 서명을 해야 하고 △계약 뒤 계약서 사본 (청약서 부본)을 반드시 수령해야 하며 △약관을 전달받아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63%가 보험 가입 때 필요한 판매자 의무 사항을 아예 모른다고 답했다. 특히 은행에서 가입한 사람 가운데 3대 기본질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계약서 사본을 받았다는 사람은 21%(567명 중 120명)에 불과했다.
계약서 사본은 보험 가입자가 계약을 신청한 뒤 계약이 성립될 때까지 계약 내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사본이 없으면 청약 직후 발생한 사고에 대해 보험금 청구 때 보험금을 받는 게 어려워질 수도 있다. 사본 수령은 보험 계약자 권리를 온전히 지키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은행에서 보험에 가입한 뒤 계약서 사본을 받았다는 응답자가 21%에 불과하다는 말은, 가입자 가운데 상당수가 향후 사고에 대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에는 보험 서비스가 없다?=은행에서 가입할 경우 보험사에서 가입하는 것에 비해 보험료가 저렴하지 않은데도 서비스는 거의 없다. 은행들이 보험 판매는 하고 있지만, 보험금 청구나 해약업무 처리 등 보험계약 관리를 위한 창구를 따로 운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응답자의 상당수(54%)는 보험계약은 은행에서, 보험금 청구는 보험사에서 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보험금 청구를 보험사에 해도 되지만, 보험을 판 은행이 고객 입장에서는 보험설계사에 해당되는 만큼 보험금도 보험상품을 판 은행에 청구할 수 있다는 주권 의식이 없는 탓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심지어 은행에서 가입한 보험상품이 해당 은행의 상품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전체의 33%나 됐다.
은행에서 보험에 가입하면 보험 권유자가 보험 판매 유자격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인도 쉽지 않다. 실제로 은행은 지점별로 2명 이하의 범위 안에서 보험 판매 유자격자를 두도록 돼 있다. 판매 자격이 있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보험상품을 권유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은행 직원 대부분이 이런 규정을 무시하고 보험상품을 함부로 판매하고 있다. 보험사에서는 자격 없는 사람이 보험상품을 판매한 뒤 자격있는 사람의 코드로 계약을 처리하는 것을 ‘대체계약’이라고 한다. 대체계약은 보험 판매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된다. 금융감독원도 이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불법 판매가 은행에서는 흔한 일로 치부되고 있다.
보험사의 경우에는 3대 기본질서 지키기를 어겼을 때 계약자가 3달 안에 민원을 제기하면 납입 보험료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 그러나 정작 은행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징계를 내린 적이 없다. 한마디로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금융소비자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이런 은행의 불법적 보험 판매에 대해 철저히 따질 필요가 있다. 더불어 금감원은 은행의 보험 영업을 좀더 철저히 감독하고 규제도 세분화해야 한다. 보험 계약자 보호에서 은행과 보험사가 다를 이유가 없다. 오히려 여러 금융상품을 동시에 판매하는 은행이 보험사보다 더 까다로운 감독을 받아야 한다.
대출 생색내며 보험 끼워팔아
꺾기 강요하면 눈치 보지말고 금감원에 신고를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박아무개 사장은 3년 전 거래은행으로부터 사업 자금을 대출받았다. 공장 터를 담보로 1억원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은행 직원으로부터 보험상품 가입을 권유받았다. 대출 승인에 따른 당연한 ‘의무’처럼 채근하는 직원의 말에 그는 마지못해 7년짜리 연금보험 100만원을 붓기로 했다.
은행 직원이 7년만 유지하면 원금이 보장된다고 했다. 적금하나 든 셈 치고 그는 청약서에 흔쾌히 싸인을 했다. 3년간 보험료를 납입한 즈음, 그는 사업자금이 모자라 결국 보험을 깨야만 했다. 그런데 은행에 해약문의를 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동안 부은 돈이 3000만원이 넘는데도, 환급금은 절반이 안됐기 때문이다.
억울했지만, 박 사장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절반의 돈만 찾아 은행을 빠져 나와야 했다. 사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은행과 계속 거래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방카슈랑스가 시작되기 전 은행은 서민이나 중소기업인들을 상대로 대출 승인 대가로 적금을 끼워 팔았다. 그런데 방카슈랑스가 시작된 뒤 은행의 꺾기 상품은 적금에서 보험상품으로 옮겨갔고, 최근에는 펀드와 변액보험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은행의 꺾기 관행이 적금에서 보험, 보험에서 펀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급한 처지에서는 은행이 대출서류와 함께 내미는 상품 가입 권유서를 차마 거절하기 어렵다. 은행의 꺾기 판매는 말그대로 불법이다. 마땅히 금융 소비자로서 당당히 거절할 권리가 있다. 꺾기 상품이 특히 보험이라면 금융감독원의 ‘방카슈랑스 부조리 신고센터’(국번없이 1332)에 접수하면 된다.
보험상품을 권유한 은행 직원은 그 순간부터 철저히 고객을 위한 보험설계사가 돼야 한다. 고객들도 필요한 상품을 권유받은 게 맞는지, 혹은 가입 뒤 어떤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은행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 방카슈랑스란? = 방카슈랑스는 보험사가 아닌,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이 보험사의 대리점 또는 중개사로 등록해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제도다.
보험사에서 상품을 만들고 다른 금융회사들은 보험사로부터 상품을 받아서 판다. 따라서 은행에서 보험상품에 가입할 때는 은행의 신용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 보험상품을 만든 보험사를 잘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방카슈랑스를 통해 판매할 수 있는 보험상품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지금은 2단계로, 모든 보험상품을 은행 등이 판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3년 8월부터 2005년 3월까지 1단계 기간에는 저축성 상품과 연금보험, 변액보험 등이 판매됐으며, 2단계 확대 기간인 오는 2008년 3월까지는 1단계 때 판매가 허용된 상품과 함께 개인(장기)보장성 보험 가운데 제3보험이 추가됐다. 2단계가 종료된 이후에는 개인(장기)보장성 보험 전부와 개인용 자동차보험도 추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