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그런 남자에게 목을 맨 걸까
남자, 태어나다 2006. 12. 21. 20:24
어떻게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여자가 저런 남자를 혹은 저런 남자가 저런 여자를… 뭔가 약점을 잡혔나? 아니면 사고를 쳤나? 도대체 이유가 뭐야?? 그냥 안 어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주변사람을 기절시키는 커플이 있다. 쟤 완전 미쳐서 뵈는 거 없는 거라며 경악하지만 아마 본인도 본인이 뭔 짓을 하는지 알고 있을 거란 게 내 생각이다.
글/ 젝시라이터 바니언니

돈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며 독단적이고 철 없고 바람기 있고 무엇보다 나를 무시하는 그. 나보다 키도 작고 얼굴도 비호감에 학력도 딸리고 나이도 많고 뭐 하나 내세울 거 없는 그.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삑~ 울리고 그와의 미래, 그리고 내 가족과 친구들의 반응이 두렵다.
집안 좋고 자상하고 지적이고 직장 좋고 친절하고 매너 있고 말끔하고 성격 좋고 날 아껴주고… 어디다 내 놓아도 손색없는 조건에 미래를 생각하면 든든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든든하기 짝이 없는 좋은 남자의 여왕님보다 별 볼일 없는 남자의 구박덩이가 되려 자처하는 나는 왜 휘발유로 샤워하고 불구덩이로 다이빙을 하는 걸까?
어떻게든 안면이 있다는 것도 두려울 만큼 질이 나쁜 인간이 있다. 내가 봐도 원래 싸가지는 없었지만 사람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는 더더욱 끔찍했다. 나와 부딪힐 일 없던 몇 년간 벌인 그의 행적이었는데 말하기도 생각하기도 끔찍스럽다.
그런데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아이의 싸이 홈피에 갔다가 그 아이가 그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의 요상한 곳에서만 발휘되는 신기로 둘이 사귀고 있는 걸 눈치챘다. 그 사람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 아름다운 아이의 일생은 그 날로 종쳤다는 걸 알고 뭔가 나쁜 짓을 했고 당했구나, 하겠지만 비록 일촌공개로, 타인 명의로 꼭꼭 숨겨둔 커플 홈피를(그걸 찾은 난?) 보면 서로 미쳐도 단단히 미쳤단 걸 단박에 눈치챌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외적으로 보이는 외모, 나이, 경제력과 배움의 차이로 사랑을 논한다는 건 잘못된 일이란 걸 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랑으로 커버될 수 있는, 그러니까 타인이 봐서 수긍할 수 있는 한계점이란 것이 있는데 그게 너무 어이없을 때는 말문이 턱 막혀버린다.
이런 혼돈으로 가득 찬 와중에 검색 도중 소설가 배수아의 [내 안에 남자가 숨어있다] 中 “트리거 포인트” 의 내용 한 토막을 개인 홈피에 옮겨놓은 것을 발견했다.
“트리거(Trigger)는 방아쇠란 뜻이다. 이성을 만났을 때 결정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방아쇠. 예를 들어 자신의 트리거포인트가 길고 하얀 손가락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잘나고 매력적인 이성이라도 손가락이 짧고 못생겼으면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것이다. 설사 나머지 장점과 매력을 보고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영원히 그 허전함은 메울 수 없다. 반대로 다른 것이 아무리 볼 것 없어도 자신의 트리거포인트를 정확히 충족시켜주는 사람이면 언제나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도대체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머리가 뽀개지게 생각해봤다. 외모부터 성격, 전공, 직업까지 공통점이 안 잡히고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이미 명확하게 정의 내려져 있는 내가 질색하는 스타일을 떠올려봤다.
난 목이 짧아서 전체적으로 굵직하거나 토실한 느낌을 가진 곰돌이 마냥 귀여운 스타일을 싫어하는데 이걸 뒤집어 생각하면 난 남자의 긴 목이나 좀 마른 듯한 몸에 드러나는 뼈대의 움직임에서 성적인 자극과 섹시함을 느끼는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거나 만난 남자들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마르고 목이 긴 체형에 어울리는 섹시한 외모의 소유자들은 아니었다.
물론 나의 이상향은 그러했지만 현실은, 우리 어머니 정여사의 표현에 따르자면 삐쩍 말라가지고 빈티가 나고 밥이 안 붙게 생겨먹은 애송이놈이거나 마르고 시커먼 것이 ‘?종障 보이는 무장공비 같았단다. (물론 당시의 나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ㅎㅎ)
무엇이 나도 모르는 나의 트리거포인트를 자극하여 울고 웃고 하였는가? 완벽한 신랑감인 맞선남은 도대체 어떤 트리거포인트가 없어서 나의 외면을 받았는가? 이해할 수 없는 엽기적으로 안 어울리는 커플들 사이는 어떤 트리거포인트가 작용했나? 그저 마른 몸과 긴 목 만으로 그토록 고통스럽고 아프고 미쳐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정말 허무한 일이지만 혹시 나도 모르는 어떤 변태적 성향이나 억압당하고 억눌려 배배 꼬인 내 잠재의식이 기형적인 변이를 거듭해 파괴적이고 요상한 남성상을 가슴 속 깊숙이 키워오고 있다면 어떡하지?? 그게 완벽하게 충족하는 위험한 상대가 나타나 ‘급’ 미쳐버릴까 심히 두렵다.
앞이 뻔히 보이는데, 난 지금 불행한데, 나도 사랑 받고 싶은데, 이거 아닌데…. 끊임없이 울리는 머리 속 경고음에 몇 번이나 도망치고 싶지만 막상 마주 대하면 그 생각이 눈 녹듯 사라지고 그를 떠난다고 생각하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착한 여자 콤플렉스와는 좀 다르게 뻔~ 히 알면서도 저지르는 스스로 파는 무덤이 점점 깊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출처:http://blog.naver.com/a75ban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