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위기탈출 / (2) 위기 어느 정도인가

◆자영업 위기탈출 (2)◆
수년째 이어지는 경기침체와 업종간 과열경쟁으로 자영업자들이 신음하고 있다.
2004년 음식점 주인들이 솥뚜껑 시위를 벌인 후 정부에서는 지난해 자영업 종합대책을 수립해 무료 컨설팅 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상황은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
국내 자영업 위기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과잉공급을 손꼽을 수 있다.
전체 근로자 중 비임금 근로자 수는 6월 현재 33%, 자영업주 비율은 27% 수준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대비 두 배 수준이다.
국내 자영업 업종 중에는 특히 음식업이 많다.
한국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음식점 수는 외환위기 직전인 98년 54만개에서 올해 현재 60만여 개 수준으로 늘었다.
인구 수를 감안하면 80명당 음식점이 1개꼴이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휴폐업하는 음식점이 속출하고 있다.
6월 한 달 동안 휴폐업한 음식점 수는 2만2000곳에 달할 정도다.
이러한 상황은 외식업뿐 아니라 미용실 PC방 세탁소 등 대부분 자영업에 공통된 현상이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불황과 일자리 부족이다.
2000년 이래 자영업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무엇보다 기업가 정신이나 개인능력 발현을 위한 자발적인 창업보다 경기불황에 떠밀려서 자영업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은 것이 문제다.
따라서 준비되지 않은 자영업 진출이 많고 그만큼 실패사례도 늘고 있는 셈이다.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이유는 업종 사이클이 점점 짧아진다는 것이다.
2~3년 만에 업종을 전환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는 사례가 많다.
업종을 자주 전환하면 재투자에 따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자영업, 적성ㆍ경력 안맞으면 1년도 못버텨"

전문가들은 현재 자영업 위기를 창업자 자체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결과라고 분석한다.
창업컨설턴트들은 경제여건이라는 변수를 제외한다면 특히 사전준비와 기업가 마인드를 강조한다.
이상헌 창업경영연구소장은 "과거 창업 경향은 창업자가 철저한 사전 준비, 즉 사업계획서 작성이나 타당성 분석 등을 거치지 않고 유행ㆍ유명 아이템을 따라하는 미투(me too)형 창업이 많았다"며 "먹는 장사가 남는다는 속설에 따른 외식업이 주를 이룬 것도 사실이고 창업자 사업 마인드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따라하기형 창업은 결국 실패로 끝나기 때문에 나만의 전략을 세워 창업하는 창업자 사업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소비자 심리를 파악하고 적극적인 홍보전략을 세워야 하며, 서비스 질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사장은 "백화점 할인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지방 중소도시와 수도권 소형상권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고 홈쇼핑ㆍ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온라인상 판매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자영업 시장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강 사장은 "선진국에서는 보통 5년은 준비하고 창업하지만 우리나라는 준비기간이 1년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준비가 부족하다 보니 운영전략 또한 미흡하기 짝이 없는데 홍보, 직원 관리, 자금 운영, 원가ㆍ매출ㆍ재고관리 등 모든 것이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경희 창업전략연구소장은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나 장기적인 사업전망보다는 단기적인 수익만을 좇는 경우가 많고, 개인적인 적성이나 경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업종을 선택하는 예비 창업자들이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창업자들은 사업 환경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쉽게 사업을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많아 1년 이내 문을 닫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2억5천만원 들인 PC방 월세도 못낼판

오랜 소비 침체와 불황, 여기에 주5일 근무까지 겹쳐 자영업자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정부가 소비 활성화를 위해 주5일 근무를 실시했지만 자영업자들은 주5일 근무제 실시 이래 소비가 더 죽었다고 하소연이다.
서울시내 주택가에서 외식업소를 운영하는 이 모씨(42)와 오피스지역에서 외식업을 운영하는 윤 모씨(51)는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사람들이 더욱 소비를 줄였다고 말한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보니 가급적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교외 등으로 나가기 때문에 장사는 이전보다 훨씬 안된다고 말한다.
윤씨의 경우 목요일 이후에는 손님이 급격히 줄고 토ㆍ일요일은 아예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처지라며 임대료는 전혀 내리지 않았는데 매출은 30~40% 이상 줄어들어 살기가 어렵다며 얼굴을 찡그린다.
◆ 점포 빼기도 어려워 = 휴ㆍ폐업이 많고 새로 장사를 하려는 사람은 적다 보니 점포를 빼는 일도 만만치 않다.
서울 역삼동 오피스가에 있는 한 식당 주인은 3년 전 권리금 5000만원을 내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만큼만 받으려고 했으나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강남 역삼동 A부동산 관계자는 "요즘은 권리금 받는 것은 기대도 못하고 어떻게든 가게를 빼서 월세라도 아껴보겠다고 아우성"이라며 "게임장하려는 사람들이나 가게를 문의할 뿐 커피숍 문구점 식당 등 일반적인 점포를 알아보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건 있을까 말까한다"고 말했다.
월평균 소득 100만원 미만인 자영업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등 소득 측면에서도 자영업자들의 몰락과 위기를 엿볼 수 있다.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직장인 평균보다 조금 더 높은 소득을 올리는 수준이지만 실제로 투자비와 이에 대한 감가상각비 등을 감안하면 직장인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이다.
◆ 출혈 경쟁 심화 = 가격경쟁도 제살깎아 먹기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2년 전 2억5000만원을 들여 PC방을 창업한 임 모씨(33)는 처음에는 정상가격으로 운영했지만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인근 PC방들이 한두 집씩 가격을 내리다가 이제는 동네 전체가 1시간 500원짜리 PC방으로 전락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손님이 줄어든 데다 가격인하로 매출이 50% 이상 줄자 인건비도 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임씨는 아르바이트생까지 줄이고 간간이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24시간을 버티다 보니 건강도 악화돼 더는 운영하기 힘든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업종 전환을 위해 권리금을 받고 점포를 넘기기 위해 PC방을 1억8000만원에 매물로 내놓았지만 인수할 사람이 나서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물가가 오르고 있다고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경우 소비침체와 경쟁 과열로 물가를 반영해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것도 큰 애로 중에 하나다.
한식집의 점심식사 값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4000~5000원대다.
분식집 라면값이나 기타 다른 상품 및 서비스 가격도 상황은 비슷하고 가격파괴 업소들이 난립하면서 PC방이나 돼지고기집은 오히려 값이 내려가고 있다.
인건비, 임대료, 원가는 계속 오르고 여기다 카드수수료 부가세 신고 등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영업이 부진한 사업자가 손에 쥐는 돈은 거의 없다.
◆ 준비된 창업 필요 = 경기는 나빠지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자영업자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불황 때 자영업자들이 많아지는 특징이 있다.
불황에 밀려 준비가 안된 채 창업전선에 나서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준비는 기본이고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창업전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퇴직 후 무턱대고 나서는 사람들이 자영업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기업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던 양 모씨(42). 1년 이상 실직 상태에 있던 그는 주로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며 재취업과 창업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1년이 지나도록 마음에 드는 직장을 찾기 어려워지자 평소 아내가 관심을 두던 의류업 창업을 추진했다.
인천지역의 한 쇼핑타운에 수수료 매장형태로 남성캐주얼전문점을 열었다.
우연히 아는 사람에게 브랜드를 소개받았는데 전망 있다는 말만 듣고 1억원 넘게 투자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매출의 반도 나오지 않았고 상가가 활성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손님은 없고 양씨는 고민만 늘었다.
의류업 특성상 고객과의 화술, 코디에 대한 감각이 필수적이지만 고객들이 그냥 들렀다 나가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지레 짐작으로 고객을 불친절하게 대하게 됐다.
양씨는 툭하면 아내에게 가게를 맡기고 다른 사업을 알아보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매달 적자만 쌓여 현재는 가게 문을 닫은 상태로 인수할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고있다.
반면 서울 중계동에서 초밥전문점(아찌)을 운영하는 곽정근 씨(34)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치밀한 시장조사, 남다른 경영수완으로 창업 8개월여 만에 13평 남짓한 매장에서 월 평균 4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잘 나가는 공기업(KT)에 다니며 남부러울 게 없던 곽씨는 1년간 철저한 준비를 거쳐 창업전선에 나섰다.
경기 나쁠수록 자영업 진출 크게 늘어

한국 자영업 비중(농림수산업 제외)은 외환위기 여파로 크게 늘어난 뒤 잠시 줄어들기도 했지만 2000년대 이후에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의 투자 부진과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주요 원인이다.
고용구조가 임금근로에서 자영업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 2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가 나빠질수록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실업률이 높아질수록 자영업 진출은 늘어난다.

즉 불황과 실업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자영업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캐나다 등 선진국을 분석한 결과와는 다른 결과다.
결국 준비되지 않은 창업이 많아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는 셈이다.
연령이 높을수록 자영업을 택할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은 기업에서 오랜 기간 일하기 어려워지고 나이가 많을수록 임금근로자로 재취업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경기 불황과 학력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학력이 낮을수록 경기가 나빠질 때 자영업으로 진출하는 예가 많다.
중학교 학력 이하인 경우 경기가 나빠질수록 자영업 진출이 많아지는 것으로 나타났고 반대로 대졸 이상 고학력자들은 경기가 좋을 때 자영업 진출이 많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경우 학력이 높을수록 자영업 진출은 자발적 형태를 띠는 셈이다.
직업별로 보면 전문직 종사자는 경기와 무관하게 자영업을 선택하므로 기업가 정신이나 개인 능력에 따라 진출이 이뤄짐을 알 수 있다.
또 임금이 안정적인 사무직 종사자들에게 경기 부진은 자영업 선택을 억제하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서비스업, 농림어업 종사자들은 경기가 나쁠 때 자영업으로 많이 진출한다.
자영업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은 서비스업, 특히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이 주도하고 있다.
2004년 현재 전체 자영업주 36.1%가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에 종사하고 있다.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은 서비스업 구조조정에 따라 타격이 예상된다.
김기승 국회예산정책처 경제정책분석팀장은 "서비스업이 대형화ㆍ전문화하면서 임금근로자 비중이 커지면 자영업자의 퇴출이 발생하고 이에 따른 사회 갈등도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자영업 시장에도 사회 전체적인 현상인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02년 이후 100만원 미만의 자영업주 비중이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증가하고 있고 200만원 이상의 자영업주 비중은 같은 기간 29.0%에서 32.1%로 3.1%포인트 증가했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자영업주 사이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급변하는 사회경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는 적자를 내거나 생계비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빈곤 위험성에 노출돼 있는 자영업주는 60세 이상 고령자, 저학력자, 여성 자영업주에 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노동연구원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4년을 기준으로 국내 전체 자영업주 62.1%가 종업원이 없고, 29.4%는 1~4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
5명 이상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자영업체는 8.6%에 불과해 대부분 업체가 영세함을 보여준다.